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_유재필(오혜)
✔완독: 10월 7일
✒기록: 10월 10일
📜카테고리: 에세이
퇴근길에 강남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구매한 책이다. 제목을 보고 동질감과 왠지 모를 안도감에 끌려 집어들 수밖에 없었던. 특히나 책 뒷표지의 추천사가 위로를 해주는 듯해 좋았다.
어릴 때부터 ‘왜 이렇게 말이 없어?’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나에게 ‘말하기’란 정말 큰 노력이 들어가는 행위다. ‘말하기’는 여러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도 매 단계가 쉽지 않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생각해내야 한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자연스러운 말들. 내 의도를 오해없이 전달할 수 있는 적합한 단어들. 적절한 말을 생각해냈다면 다른 사람들과 겹치지 않게 말할 수 있고 적당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타이밍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보통 이 단계에서 실패한다. 열심히 생각한 이 말을 꺼내도 될지, 부적절하지는 않은지 고민하느라, 또는 말할 틈을 찾느라 이야기의 주제가 어느새 바뀌어버리곤 한다. 다시 첫단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말을 꺼내고 난 후도 문제다. 내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야하고 혹시나 들어올 질문들에 대비해야 한다.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의 내 ‘말하기’ 경험이 쌓여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것 같기도 하다. 좋지 않았던 경험들이 말하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좋은 경험도 분명히 있을 텐데, 안 좋은 것들만 강렬히 기억하는 뇌가 애석하다.
한편 말을 한다는 것은 책임이 생겨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말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은 출처가 불분명하고,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호하며, 내 생각이라 해도 진실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 스스로도 알기 어렵다. 나조차도 내 생각을 모르는데 남에게 그 생각을 표현하고 책임지기란 얼마나 어렵겠는가. 게다가 뱉어낸 말은 타인에 의해 왜곡된 상태로 옮겨질 수도 있다. 이러한 탓에 사람들의 말을 듣고만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 편하자고 이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긴 하다.
반면 글은 확실하다. 물론 언어라는 것이 그렇듯 글도 언제나 오해의 소지가 있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억양이나 강세를 담을 수도 없어 분위기를 담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말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반면 글은 분명한 글자라는 형태로 남아있으며, 완성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이게 문자와 글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다.
제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이라 제목에 대한 생각이 길어졌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라는 제목에 걸맞게 결이 비슷한 내용들로 책이 채워져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제목과 관련된 글은 몇 장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도 제목만으로 위로가 되기도 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책은 에세이같은 형식으로, 작가의 다양한 생각들로 채워져 있었다. 왜 제목을 이걸로 결정한 건지 궁금하다. 이 제목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자기 전 가볍게 읽어볼까하고 들었는데 읽기 어려운 내용이 없어 휘리릭 읽어버렸다. 에세이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쉬운 장르의 책인 것 같다. 문학처럼 어려운 메타포로 생각을 표현하기보다는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으니.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에세이는 항상 흥미롭고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