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결정_오가와 요코(문학동네)

rk_dal 2022. 2. 17. 20:59

✔완독: 2월 16일

✒기록: 2월 17일

📜카테고리: 소설

 

 이 소설은 1994년작이지만, 내가 읽은 것은 꽤 최근인 작년에 출판된 것이다. 무언가 계속해서 소멸한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해서 집어 들었다. 단순히 물건, 어떤 존재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종 전체, 개념 자체가 소멸한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것은 소멸의 방식이다. 마법처럼 짠하고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이 직접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관련된 것들을 없앤다. 여기서 ‘새’가 없어지는 것을 예로 들면, 이 섬에 있는 모든 새가 날아가버려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새와 관련된 책, 직업, 그림 등 모든 것을 불태우고 박탈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더 이상 새와 관련된 추억, 기억, 감정들은 남아있지 않고 새를 본다 해도 더는 그들에게 의미를 갖지 않게 된다. 저항할 수 없는 자연적인 소멸과 사람들이 직접 행하는 인위적인 소멸이 섞여있는 셈이다. 여기서의 인위적인 소멸도 저항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늘 그렇듯 소멸에 영향을 받지 않는 특이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섬의 비밀경찰들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어 어딘가로 끌고 간다. 소설 속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은 존재가 바로 비밀경찰이었다. 책 속에서는 이들의 목적을 전혀 알 수 없다. 사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소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과 영향을 받는 사람은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실에서 이런 소멸 현상이 일어난다면 과연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책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잔잔하다. 약간 쌀쌀한 날씨의 안개같다. 읽을수록 우중충한 날씨와 회색빛의 작은 마을이 연상된다. 약간 느릿하지만 어딘가 긴장감이 깔려있다. 이 책을 읽고 무언가 의미를 발견해냈다면 좋았을 텐데, 이야기 이면에 있는 작가의 의도 같은 것은 아쉽게도 파악하지 못했다. 더욱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의 결말이라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책의 소개를 검색해서 읽어보니 ‘안네의 일기’가 이 책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알고 읽었으면 관련된 것을 연상하며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직접적인 오마주가 들어가 있다는데, 읽을 때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 책에는 엄청난 서스펜스가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미스터리한 소설을 좋아한다면 추천한다.